그러므로 서로 다른 기자들이 서로 다른 사고의 틀을 가졌는지를 확인하고, 어떠한 요소들이 기자의 사고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일차적으로 그의 신민들에게 율법을 수여하시는 자로 생각하는 율법적 준거틀과 하나님을 기본적으로 그의 자녀들과 가족관계 속에 계신 아버지로 생각하는 인격적 준거 틀 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율법적 준거 틀은 기본적으로 규칙들의 형태로 된 도덕적 가르침을 만들어내지만, 인격적 준거 틀은 성품을 닮는 것을 촉진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갖는다.
틀과 내용이라는 구별은 유동적이다. 한 사람의 가르침이었던 것이 이제는 또 다른 사람의 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 하나님은 아버지로 생각되는 경우는 드물고, 흔히 그의 백성과 계약을 맺은 자로 생각되었다. 그의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상은 새로운 방식으로 도입된다. 이 사실을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관심사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기독교적 사고를 위한 틀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틀이 변화되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해, 즉 그의 가르침의 내용의 일부로 제시하였던 것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거나 그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없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틀의 일부가 됐다. 그러한 틀 속에는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될 여지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기자들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틀 내에 성자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것을 붙잡고 씨름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번 틀이 변화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단일신론적 틀과 반대되는 삼위일체론적 하나님 이해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틀 내에서 생각하는 방식들은 이런 식으로 천착될 수 있다. 나아가 저자의 주된 관심 또는 관심들과 그 관심의 세부적인 적용을 구별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구별을 함으로써 우리는 특정한 저자의 사상이 아닌 초점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고, 나무들만을 봄으로써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세 권의 공관복음서들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상당한 정도의 유사성과 중복성을 보여주지만, 각각의 복음서들의 주된 관심들에 주목하게 되면, 우리는 각각의 복음서들이 자료들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한 정도의 차이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마태는 선생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하지만, 요한은 계시자로서의 예수를 강조한다. 틀, 내용, 관심, 세부적인 적용은 이렇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범주를 형성한다. 이 세 범주 간의 구별은 아주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신약성서 기자들의 사상을 분석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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