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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jor_전공 관련 정리/New Testament_신약 관련

[Theology] 신약성서 신학 (New Testament Theology) 13

by loveelovee 2022. 12. 21.

신약성서와 선교

 

  신약성서의 저작들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동일한 시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 외에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그들은 모두 예수와 그의 활동의 방향들에 관심을 갖고있다는 것이다. 이 저작들은 유대교 문헌에 속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활동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교 문헌중에서도 특별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작들은 기독교 신학을 본래의 유대교적인 신학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제시한다.이 저작들의 공통의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구주이자 주님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저작들을 선교문서들로 인식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약성서의 저작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예수 자체 또는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구주와 주님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예수이다. 신약성서 신학은 본질적으로 선교 신학이다. 내가 한 이 말의 의미는 신약성서의 문서들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선교의 결과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첫번째 부분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아서 그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축복들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나라에 응답하도록 부르신 예수의 선교이고, 두 번째 부분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서 그의 사역을 이어받아서 예수를 주님이자 구주로 선포하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부르며 지속적으로 예수에게 헌신하게 하여 그의 교회를 성장하게 만든 그의 제자들의 선교였다. 신약성서의 신학은 이러한 운동으로부터 생겨나고 형성되었으며, 또 이번에는 그 신학은 교회의 지속적인 선교를 이루어내었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문서들의 일차적인 기능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선포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 문서들의 가르침은 그러한 복음을 좀 더 자세하게 해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문서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자들의 영적인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 그 문서들은 교회가 선교를 위해서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선교의 진전에 방해물들이 되는 그러한 문제들을 다룬다. 요컨대, 하나님에 의해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서들과 서신들을 비롯한 여러 글들을 씀으로써 그들의 부르심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회심하게 만들고, 그런 후에 그들을 양육하는 것, 즉 새로운 신자들을 만들어내어서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함으로써 성숙에 이르게 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일은 신약성서 전체에 해당되는 것의 본보기 역할을 한다. 반 운닉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를 설득력있게 설명하였다. 그는 복음서를 예수께서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선포한 좋은 소식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고, 그런 후에 사도행전을 복음에 대한 확증, 복음이 선교사들에 의해서 선포되었을 때에 그 복음이 거기에 응답한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복음으로 보아졌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으로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기록으로 규정하였다. 이렇게 신약성서는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선포된 메시지를 해설하는 데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신약성서의 저작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동일한 시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 외에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그들은 모두 예수와 그의 활동의 방향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저작들은 유대교 문헌에 속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활동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교 문헌 중에서도 특별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작들은 기독교 신학을 본래의 유대교적인 신학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제시한다. 이 저작의 공통의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구주이자 주님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저작을 선교문서들로 인식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약성서의 저작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예수 자체 또는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구주와 주님의 역할을 하는 예수이다. 신약성서 신학은 본질적으로 선교 신학이다. 내가 한 이 말의 의미는 신약성서의 문서들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선교의 결과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아서 그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백성들이 그 나라에 응답하도록 부르신 예수의 선교이고, 두 번째 부분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서 그의 사역을 이어받아서 예수를 주님이자 구주로 선포하고 사람들을 믿음으로 부르며 지속해서 예수에게 헌신하게 하여 그의 교회를 성장하게 만든 그의 제자들의 선교였다. 신약성서의 신학은 이러한 운동으로부터 생겨나고 형성되었으며, 또 이번에는 그 신학은 교회의 지속적인 선교를 이루어내었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문서들의 일차적인 기능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선포된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 문서들의 가르침은 그러한 복음을 좀 더 자세하게 해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문서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자들의 영적인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 그 문서들은 교회가 선교를 위해서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선교의 진전에 방해물들이 되는 그러한 문제들을 다룬다. 요컨대, 하나님에 의해서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서들과 서신들을 비롯한 여러 글을 씀으로써 그들의 부르심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회심하게 만들고, 그런 후에 그들을 양육하는 것, 즉 새로운 신자들을 만들어내어서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함으로써 성숙에 이르게 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 일어난 일은 신약성서 전체에 해당하는 것의 본보기 역할을 한다. 반 운닉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는 복음서를 예수께서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선포한 좋은 소식에 관한 기록으로 보았고, 그런 후에 사도행전을 복음에 대한 확증, 복음이 선교사들에 의해서 선포되었을 때 그 복음이 거기에 응답한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복음으로 보였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으로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기록으로 규정하였다. 이렇게 신약성서는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선포된 메시지를 해설하는 데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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