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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jor_전공 관련 정리/New Testament_신약 관련

[Theology] 신약성서 신학 (New Testament Theology) 15

by loveelovee 2022. 12. 24.

신약성서의 근저에 있는 그 존재 이유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러한 연구를 위한 자의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탐구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할 주장이고, 맞든지 안 맞든지 모든 것을 거기에 짜 맞추려고 해야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니라 과연 그것이 연구의 결과들에 의해서 타당한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검증되어야 할 주장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책의 실질적인 내용들이 다 완성되고 이 연구의 결과들이 무엇인지가 좀 더 분명해진 이후에 서론의 이 부분이 쓰였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신약성서는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와 더불어서 기독교 성경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 및 초기 기독교회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겨났다. 신약성서는 조직적이고 교의적인 신학의 역사적 발전의 초기에 서 있다. 신약 신학이라는 과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각각의 관계와 그 관계들의 연관성을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신약성서를 성경의 일부로 여긴다면 몇 가지 중요하고도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이러한 문제들은 두세 가지의 서로 관련된 과제들로 이어진다. 첫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구약성서와 유대교 속에서 표현된 종교의 상속자들로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과의 연속선상에 서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백성들의 신앙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구약성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할 것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특히 신약성서의 기자들은 구약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둘째, 단순히 신구약성서 중의 어느 하나의 신학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신학을 쓰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바람직한가? 성경 전체의 신학을 쓰는 일은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고, 그러한 작업은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따로 다룰 때 생겨나는 것과 동일한 문제, 아주 긴 시간에 걸쳐서 다양한 문학 양식들을 사용해서 수많은 사상들을 표현하고 있는 방대한 문학 작품들을 다룰 때 생겨나는 문제-그 작품 중에는 많은 것이 상반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들은 원시적이고 어떤 것들은 좀 더 발전된 것들이다-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작업을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목표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환영받아야 하고, 지금까지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 시도가 적어도 두 번 있었다. 셋째, 신약성서에 대한 성경적 신학을 쓰고자 시도하는 책들의 제목들 속에서 조금 덜 야심적인 과제가 드러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신약성서 기자들의 사상의 뿌리가 구약성서(유대교 문헌들 속에 나타난 구약성서에 대한 전승들) 속에 있고, 신학자의 한가지 임무는 그 뿌리들을 드러내서 어떻게 그 뿌리들이 나무가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방식을 결정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스 휘프너의 저작은 이러한 방법론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적용하고자 한 시도였지만, 오직 신약성서 신학 이러한 측면에만 집중하고 다른 자료인 구약성서는 한쪽으로 밀쳐놓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좀 더 폭넓고 만족스러운 접근방식은 페터 슈툴마허의 접근방식인데, 그의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은 신약성서 신학은 구약성서에서 기원하였음과 동시에 구약성서에 대하여 열려 있는 신약성서에 대한 성경적 신학이 되어야 하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함께 고찰하는 성경 신학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원칙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슈툴마허의 견해는 옳다. 신약성서 신학에 대한 연구는 신약성서에 현재의 형태를 부여하는 데에 기여해온 요소들로부터 생겨나는 특징들을 추적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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