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를 살피기
우리가 관심을 가진 주제에 관한 신약성서의 여러 저자들의 가르침을 단순히 요약하고, 그러한 진술들을 각각의 맥락 속에서 그 역사에 비추어서 세밀하게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약은 화가가 인간의 몸이나 조각상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표면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그 몸이 왜 그러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또는 서로 다른 각각의 부분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는 외적인 모습이 내적인 작용들과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의 형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신약성서에 담겨 있는 수많은 가르침을 조직함으로써 그 사상의 구조와 그 기저에 있는 근거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모종의 원칙들이 필요하다.
가르침이나 선포 같은 용어들의 사용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의도적인 정형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신약성서의 책들은 단지 가르침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인 체험에 관한 이야기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체험을 이해하는 것은 신약 신학의 과제의 일부이다. 이것은 특히 가르침이 체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슈타우퍼는 그의 신약 성서신학에서 기도에 관한 장을 포함함으로써 선포와 가르침에 집중하는 접근방식들이 지닌 맹점을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신약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가르침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우리의 주제에 대한 이해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들인 그 근저에 있는 역사와 체험도 아울러 보아야 한다. 따라서 바울의 신학은 단지 바울이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열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러한 문학적인 저작을 산출해낸 정신의 내용물들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신약성서의 여러 문서 속에 반영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 및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파악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그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저작 속에서 단편적으로 또는 좀 더 종합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각각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분석해서 저자가 지닌 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과정이 지닌 위험성 중의 하나는 체계화의 위험성, 즉 논리적인 연결 관계들을 추적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시도하는 위험성이다. 모든 신학자가 칼뱅과 같은 논리 정연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체계들을 신약성서의 기자들에게 투영시키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우리의 지식 속에서 존재하는 불가피한 공백들을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메우고자 하는 유혹도 존재한다. 우리는 신학을 원래의 것보다 더 완전하고 체계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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