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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jor_전공 관련 정리/New Testament_신약 관련

[Theology] 신약성서 신학 (New Testament Theology) 18

by loveelovee 2022. 12. 29.

  둘째, 예수의 역사적 활동은 기독교 운동 전체와 그 사상과 실천을 발전시킨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적절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그의 제자들의 신학 전제이다. 셋째, 예수는 복음서들에서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 기자들의 저작은 신약성서 신학을 탐구하는 데에 중요한 일부로 여겨져야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수준의 접근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불트만은 오직 두 번째 수준에서만 예수의 메시지를 다룬 것이 된다. 불트만은 어쨌든 세 번째 수준을 간과함으로써, 신약성서 신학에 대한 발전론적 접근방식이 어떻게 한 학자가 최종 결과물들을 살펴볼 필요성에 대하여 눈감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불트만도 두 번째 수준을 다루면서 첫 번째 수준도 거기에 병합해서 다루었다고(그것을 완전히 생략한 것이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것을 짧게 다룬 이유는 복음서들의 많은 부분에 관한 그의 회의적인 태도와 예수께서 행하신 것에 관한 역사는 기독교 신앙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그의 확신이 결합하였기 때문이다. 불트만에게 중요했던 것은 예수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분명하게 추적될 수 있는 극소수의 말씀들 속에 드러난 실존론적 도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라야 할 적절한 방법론은 잘 알다시피 첫 번째 수준과 두 번째 수준에서 예수를 독자적으로 다룬 후에, 복음서 기자들의 기여를 그 후에 독자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제의 첫 번째 부분은 실제에 있어서는 심각한 난점, 즉 신약성서 신학에 관한 책에 적절한 한계를 넘어섬이 없이 예수의 사역과 메시지에 관한 올바르고 견고한 재구성을 제시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기능하느냐는 난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재구성은 그 범위와 복잡성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주된 문제이기 때 문에, 그 문제는 본서와 같은 신약 신학에 관한 책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다루어져서, 많은 것들이 검토되어야 한다. 학계에서는 여전히 공관복음서들은 예수께서 어떻게 행하고 말씀하였는지에 관한 상당히 믿을 만한 그림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과 복음서의 기사들은 신빙성이 없고 역사적 예수는 예수에 관한 복음서의 묘사들과는 상당한 정도로 다르다고 믿는 학자들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계속해서 한한다. 나는 다른 곳에서 전자의 기능성을 옹호하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는데, 여기에 서는 나의 그러한 견해를 옹호하는 좀 더 자세한 논거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트만이 채택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택해서, 예수에 관한 공관복음서의 묘사들은 역사적 실체에 충분히 근접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들을 예수의 선교와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꽤 토대가 튼튼한 전제 위에서 복음서 기자들이 우리에게 제시한 대로의 예수의 신학을 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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