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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jor_전공 관련 정리/New Testament_신약 관련

[Theology] 신약성서 신학(New Testament Theology) 20

by loveelovee 2022. 12. 29.

  신약성서는 주 후 1세기에 가능하였던 방식들 내에서 사상을 표현한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가능한 한 최대로 독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들은 그 이후의 여러 세대에 걸친 지적 발전에 의해서 형성된 우리 자신의 방식들과 다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고와 부합하는 사고방식들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거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태양 중심적인 우주관의 틀을 아직 생각하지 못하였고, 지구는 평평하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의 물리적인 사고의 틀을 공유할 방도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의 전위 사상가들에 의해서 자신 있게 부인되는 하나님의 존재 또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조차도 부인 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행위자들과 초자연적 행위들의 존재에 대한 신앙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하여야 하는가? 오늘날의 사고 틀은 신약성서의 사고 틀에 의해서 어느 정도 도전받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약학자들이 신학을 쓰는 것은 그들의 정당한 분야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거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규범적임을 알아차리고서, 신약학자들이 그들의 연구를 역사에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은 궁극적으로 가블러(J. P. Gabler, 1787)가 쓴 저 유명한 논문에까지 소급될 수 있는 역사 신학과 교의 신학의 분리에 토대를 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가블러가 그러한 주장을 했던 것은 당시의 학계가 교회의 정통 교리에 의해서 족쇄가 채워져 있는 상황을 한탄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가 제안한 역사 신학과 교의 신학의 분리는 학자들에게서 당시 교회의 신학에 맞춰서 책을 서술하여야 했던 족쇄를 풀어 주어서 학자들이 신약성서의 신학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지는 의심스럽다. 교수들이 어느 당파적 노선에 추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관들이 존재한다면, 학자들은 그들이 본문과 정직하게 씨름하는 것을 방해하는 교의 신학의 그 어떤 주장들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신약학자들이 교회에 대하여 말할 수 있고 교회가 신약학자들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유익한 대화가 가능하여야 한다. 발라(Balla)가 레이제넨의 비판에 맞서서 신약 신학 연구를 옹호하면서 제시한 것은 신약 신학의 연구는 본질적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적 사상에 관한 서술적 설명, 즉 역사적 과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건전한 재치 있는 말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 중의 일부는 이러한 과제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수행하고 있고, 우리가 속해 있는 기독교 공동체라는 맥락 속에서 수행하고 있다! 프랜시스 왓슨(Francis Watson)이 특히 설득력 있고 올바르게 주장했듯이, 신학을 한다는 것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수행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활동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가 학자들이 교회 내에서 누리는 자유에 관하여 말한 것이 옳다면, 학자들은 그들의 학문 활동과 신앙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서 각각의 영역이 다른 영역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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